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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절) 



말씀과 동행

NKCL 25년 8월 4주차 말씀

<NKCL 말씀과 동행> 8월 넷째 주!


<고난은 시련을 통하여 생명의 꽃을 피우게 합니다!>

(눅 8:40-56절)


“회당장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된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라!”(41-42절)


아직 철이 들기 전에 형제들의 죽음을 목도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 같았던 맏 누나가 출산을 하려 친정에 와서 조카를 낳고 삼일 만에 그 아들과 함께 숨을 거두어가던 것과, 태어 난지 얼마 되지 않은 동생이 부모님 품에서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떳다 하던 모습이 환영처럼 남았습니다, 그 작은 몸을 흰 천에 싸서 지게에 지고 어두움이 내린 집문 앞을 나가시던 아버지의 뒷그림자가 지금도 어제의 일처럼 떠나지 않습니다!

중 2학년 때 죽음의 공포증에 시달려 겨울 방학 내내 불면증으로 시달리던 소년은, 40대로부터 60대가 되기까지 목회자에서 선교지로 부름을 받아 20 여년이 지나고, 암 병동에 갇혀항암치료와 수술을 한 후 혼미한 정신으로 병원의 창 박을 내다보며 나는 저 사람들처럼 언제 걸을 수는 있을까, 내가 다시 저 사람들처럼 차의 핸들은 잡을 수 있을까 했었습니다!

성경의 본문은 사랑하는 딸과 자신의 생명을 두고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죽어감이러라”하던 자리에 “아이야 일어나라!”하신 주님의 음성이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1.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4절)


본문은 예수님을 초청한 사람 회당 장에 대하여 말씀을 시작합니다. “회당”은 바벨론 포로시기에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었던 유대인들이 율법을 가르치기 위해 세웠던 장소(행13:5절)입니다. 그후 10여 명 이상이 모이면 세울 수 있었던 종교와 사회적 중심이 되었으며 “회당장”은 이를 관리하는 책임자로 교회의 장로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대인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초대했다고 합니다. 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문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렸다”합니다.

“당신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란 질문은 “당신은 예수님을 만났습니까”란 대답과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 만났습니까”는 삶의 전환이 Turning point가 있었습니까?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사람의 육체를 집이라 표현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5:1절). 그리고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6:19절)하였습니다.

초청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시는 집과 성령의 전(거처)인 심령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손을 댄 자가 누구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중에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43-44절)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여자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혈루 증을 앓았습니다. 이 모습은 죄 가운데서 태어나 죽음 앞에서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아픔을 대변합니다. 예수님의 기사와 이적을 육신의 것으로 삼을 때 교회는 세상의 것이 되며 타락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으로 가실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우리가 볼 때 예수님의 계획에 없던 일 같습니다. 그런데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고 기록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면서 치유한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행3:1-10절)사람도 본래 예정에는 없었던 사람 같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간청할 때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였지만 결국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마15:21-28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이방인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다윗과 베드로까지도 죄 가운데 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역사 속의 인물들은 다 “믿음 안에서 용서와 구속”함을 받았습니다.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앎이로다”(46절)

주님께서 내미는 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누구를 통해서나 어디서도 말씀을 거역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붙잡지 마시고 세상을 주신 주님과 동행하시길 기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48절)


3.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50절)


예수님께서 길 가시던 중에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심부름꾼은 회당장에게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49절)합니다. 생명이 거두어 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은 죽음 가운데 있는 세상에 대한 선포입니다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한 생명뿐만 아니라 사망의 세상에 구원의 주로 오심을 드려내신 것입니다!

육신의 치유와 회복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은사와 표시에 치중하다 보면 생명을 살리고 구원하시는 하나님나라와 그 백성에 대한 구속의 뜻이 사라집니다.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믿음은 보이는 것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해서 소망하며 인내합니다.

나의 기도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더 곤란해지고 어려움에 갇힐 때도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손해 보고 모함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 모든 일들을 통하여 주님은 그 백성에게 육체로 없어지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거두게 하십니다.

“그들이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육체를 극복하게 하시는 것이 구원입니다.

세상의 안목으로 바라보던 것을 하나님의 안목으로 볼 수 있는 것이 구원입니다. 자기의 영역과 한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영역과 다스림으로 인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니야 일어나라 하시니”(54절). 주님께서 은혜와 긍휼의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그 손을 잡기를 기다리십니다.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56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고, 육체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연약한 믿음에서 일어나 모든 시련을 극복하며 생명의 꽃을 피우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