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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절) 



말씀과 동행

NKCL 25년 10월 4주차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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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CL 말씀과 동행> 10월 넷째 주!


<복음에 합당한 생활>

빌 1장 27ㅡ29절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제가 섬기는 블라디보스톡 믿음교회에 주일학교 학생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적에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를 다녔지만 커서는 교회도 안다니고 학교도 잘 안다녀 교회식구들도 걱정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부터는 마약에까지 손을 대기 시작하여 결국 몇주 전에 경찰에 발각되어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가지 않게하고 대신 전쟁터로 가는 군대에 자원입대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로 모스크바 인근 훈련부대로 떠나기 전에 군부대에 어머니가 면회를 가니 그동안 부모님과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눈물로 회개하며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도 이 때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된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빌 1장 27절에서 바울은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은 자들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보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이후에 감옥에서 나와 성도들과 기쁨과 감사의 만남을 미리 알렸지만 중요한 것은 날마다의 하나님 앞에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당시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순전치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괴로워하지 않고 오히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상대방은 그런 마음이 아닐지라도 바울은 자기를 적대하는 자들을 오히려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복음의 협력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담당하신 그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바울이 본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이 허물많은 나를 다 책임지고 담당했지만 우리는 단지 예수님의 마음으로 허물이 있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복음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더욱 복음을 빛나게 하는 것입니다.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괴로운 일이 아니라 기쁜 일입니다.

이렇게 북한을 복음으로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분들이 지역적으로 교회적으로 흩어져 있고 또 마음도 같지 않은데 복음으로 한마음으로 협력을 이뤄가고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요 기쁨이요 바로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라 믿습니다.


두번째는 아무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현재 한국이나 세계적인 상황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는 징조입니다. 예수님은 기근과 지진 전쟁 그리고 미혹과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마태24:9)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공생애 초기에 전도하러 나가는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과 같습니다. (마태10:22) 그런데 그 전절 말씀은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고 자식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마태 10:21) 이 말씀에 따라서 믿음으로 인해서 가족의 손에 의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손에 죽는 분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자기를 죽음으로 내모는 부모와 자식의 구원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나를 대적하는 자들은 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요, 반드시 멸망을 할 수 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불쌍한 자들입니다.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그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모욕당하고 죽임 당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증거라고 말씀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적하는 자들이 일어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손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 난 것이라(빌1:29)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로 말미암아 난 것’ 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대하14:15)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제어하는 자가 누구일까요?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히12:6)는 말씀대로 채찍질이 필요없는 아들은 없습니다. 그리고 맞으면 또 그 때 뿐일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대적하는 자들을 끊임없이 적당히 공급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전혀 두려워하지 맙시다. 오히려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증거입니다 .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기도하며 서로 도와줍시다.

서로 돌보며 기쁨으로 아름다운 협력를 이뤄가십시다 결코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맙시다. 아멘


<NKCL 사역자>

김영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