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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15:7절) 



말씀과 동행

NKCL 25년 8월 3주차 말씀


<NKCL 말씀과 동행> 8월 셋째 주!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롬1:1-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7절)

 

말씀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역의 동네 마을마다 교회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언제나 모든 매체에서 매시간 말씀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까! 출산율은 가장 낮습니까! 행복지수는 OECD국가에서 가장 낮고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젊은이들 수십만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까!

R,C 천주교가 가장 부흥하던 중세 르네상스 시대가 성경의 암흑시대였습니다. 물질이 풍성하고 예술이 극치에 이를 때 말씀은 사라졌습니다. 교회가 가장 크게 세워졌을 때(로마의 베드로 성당) 구원의 복음은 왜곡되었습니다.

지금은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거짓이 진실보다 앞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의보다 앞서도 구분하지를 못합니다. 믿음이 상식과 개념보다 못해도 부끄러워할 줄을 모릅니다!

크리스천은 항상 말씀 앞에서 세상과 자신을 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 의가 나타나 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17절)

 

육신은 사람인 부모를 통해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복음”의 어원은 헬라어(유앙겔리온)에서 “좋은소식”을 뜻하며 영어로 (gospel; evangelium)의 “Good news’ “기쁜소식”(사40:9,42장)으로 정의합니다.

복음이 사람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죽음과 사망의 권세에서 풀어주시고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복음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시며”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사시며 행하고 전한 말씀을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라 합니다.

또한 이 “예수를 그리스도 주”시라 고백(마16:16절)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 인”(행11:26, 26:28절) Christain 이라 부르며 그러한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곳를 “교회”(헬:에클레시아) 세상에서 바깥으로 부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로 칭합니다.

종교개혁(1517년)의 표어는 “말씀으로 돌아가자”입니다. 구원이 당시 R.C 구교의 면죄부(건축헌금이 곧 천국티켇)에 반대하고,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부터 온다(이신칭의”와 {종교개혁의 5대 강령}은 1.오직성경(Sola Scriptura) 2.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 3.오직 믿음(Sola Fide) 4.오직 은혜(Sola Gratia) 5.오직 하나님께만 영광(Sola Deo Gloria)입니다.

“하나님의 의” 는 예수그리스도의 출생과 삶이 되는 “십자가와 부활”을 뜻하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함은 믿음이 구원과 삶(현세와 내세)를 이루는 은혜의 통로인 것을 말씀합니다. 복음이 부재하는 것은 “말씀과 삶”인 “십자가와 부활”이 선포되지 않는 다는 뜻이 됩니다!

 

2.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들입니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7절)

 

사도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 입었다”(1절)고 하였습니다. 부르심은 소명이고, 택정 함은 복음 안에 있습니다. 구원의 표시와 씨앗은 복음에 대한 소명과 열망입니다. 만약에 누가 구원은 받았다고 하면서 복음에 대한 소명이 없다면 그는 심각하게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성도”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 이란 뜻’(고전1:2, 벧전2:9절)이 됩니다. 그런데 성도 Saint가 너무나 쉽게 불리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가 등록만 하면 성도라 합니다. 좀 많이 이상해졌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부르심은 모든 자에게”는 구원이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요3:16절)란 뜻입니다. 그런데 “구원”에 대한 해석을 따라 의미가 아주 달라집니다. “값”에 대한 의미를 설명합니다.

하나는, 값없이 받은 구원이 공짜라는 물질적 개념입니다. 무조건 적으로 주셨으니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값없이 받은 것이 아니라 대속해 주셨다는 뜻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피로 구속함을 받게 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은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절)

“행위와 자랑하지 못하게”란 말씀은 은혜를 받고 깨달은 사람이 알 수 있는 영역입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절)

은혜와 동행하는 값있는 그리스천에게 구원하심의 평강이 함께 임재하십니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아 갑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 에게로다”(16절)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기독교의 가치인 예수의 십자가와 용서를 통해서 당시 세계를 통치하며 핍박(Nero 황제시대)하던 로마제국과 다양한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신앙의 본질을 가르칩니다.

신앙은 복음 앞에서의 태도입니다. “내가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는 복음 때문에 당한 모든 대가(댓가)를 감사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결코 같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생명까지 포기해야 하는 박해와, 값없이도 환영받고 예수 믿을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누구든지 자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 마16:24절) 그 먼저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24절). 누가복음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눅9:23절라 기록합니다..

복음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입니다 “다 내가 빚진자라”(14절),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13절),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9-13절)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복음에는 내가 없습니다. 나를 위하여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라고 기록된 성경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은 받은자”라 합니다. 왜 복음이 없다고 합니까! 복음은 자신을 회개하지 않는 땅에 전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아멘,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