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KCL 말씀과 동행> 5월 셋째 주!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구원하리이까!>
(삿6:7-24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 났나이까!”(13절)
세상을 보면 언제나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손에 잡혀 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11절) 얼마나 침탈이 심하였으면 숨어서 들킬까하여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겠습니까.
그러한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여호와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매”(12절) 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고 계십니까! 무엇으로 그것을 확신하십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었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절)
매우도 절박하고 간절한 물음입니다 “오 주여, 내가 무었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우리는 누구이며 이 시대의 기드온 어떤 사람입니까! 천지의 주재되신 여호와께 물을 수 있는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셨나이다!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13절)
정말 다 망한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가 패도하여도 대한민국의 역사이래로 이 정도까지 간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원칙도 없습니다. 권모와 술수로 효도하고 미혹하여 민중의 이름으로 변명하면 그만입니다.
억대의 연봉을 받는 귀족 노조라 합니다. 그것도 부족하다 하여 나라와 백성의 기업을 자신들만의 것처럼 독식하려 아우성을 합니다. 도무지 만족을 모릅니다. 구약의 사사시대가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삿6:1절) 은혜와 성실은 잠시였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15절)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듣는 고백의 음성입니다. 언제 구원을 받았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 때문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인이며,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것이 성경이고 그 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입을 닫고 혼자 거룩하다고 하여 교회와 백성이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아주 망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머리를 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7절) 정말의 위기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남의 탓으로 하며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세우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진리와 공의를 선포하고 그 백성들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고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며 악의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2.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14절)
힘이 있어야합니다. 힘이 없으면 강탈과 죽임을 당하고 빼앗기며 종과 노예가 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가 지난주에 만났습니다. 정상회담이 사실은 힘을 겨루는 자리인 것 같았습니다. 주제가 전도 되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세우는 일이 자국의 이익과 패권에 밀려났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정치와 나라와 개인의 생명과 상관이 없다고 보십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는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3-4절)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믿음은 허상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인식입니다.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아의 손에서 구원하라” 시작이 있어야 결과도 있습니다. 말씀을 주셔야 힘을 얻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 났나이까!” 지금도 이 시대를 보면 그렇게 말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대답 하십니다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10절) 그리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려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삿7:2절).
죄가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단절합니다.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상실하게 합니다. 방법이 어떠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이 선해야 결과도 의롭습니다. 기드온처럼 심히 작은 자였으나 시작이 주님께 있을 때 함께하심의 구원이 일어날 것입니다!
3.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아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24절)
처음부터 기드온의 마음에 믿음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16절) 그런데 기드온이 대답합니다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시는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17절)
믿음과 행함의 간격을 말씀합니다 기드온이 말합니다 “내가 예물을 가지고 주께로 와서 그 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16절) 믿음의 시작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절)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18절) 예배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22절)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이 약속을 이루는 백성의 표시가 됩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3절) 본문의 기사는 기드온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지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욱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이기와 욕심과 자기를 내어놓고 생명과 전쟁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을 구하고 찾을 때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재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24절)
기드온은 전쟁이전에 하나님의 재단을 세웠습니다. “여호와 살롬”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합니다. “평강”이 온 백성에 선포되고 나라를 “여호와 살롬”으로 세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NKCL 사역자>
김영길목사
<NKCL 말씀과 동행> 5월 셋째 주!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구원하리이까!>
(삿6:7-24절)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 났나이까!”(13절)
세상을 보면 언제나 실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면 소망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미디안의 손에 잡혀 있습니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11절) 얼마나 침탈이 심하였으면 숨어서 들킬까하여 몰래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겠습니까.
그러한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여호와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매”(12절) 주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믿고 계십니까! 무엇으로 그것을 확신하십니까!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었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절)
매우도 절박하고 간절한 물음입니다 “오 주여, 내가 무었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우리는 누구이며 이 시대의 기드온 어떤 사람입니까! 천지의 주재되신 여호와께 물을 수 있는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셨나이다!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 주셨나이다 하니”(13절)
정말 다 망한 것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정치가 패도하여도 대한민국의 역사이래로 이 정도까지 간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법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원칙도 없습니다. 권모와 술수로 효도하고 미혹하여 민중의 이름으로 변명하면 그만입니다.
억대의 연봉을 받는 귀족 노조라 합니다. 그것도 부족하다 하여 나라와 백성의 기업을 자신들만의 것처럼 독식하려 아우성을 합니다. 도무지 만족을 모릅니다. 구약의 사사시대가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시니”(삿6:1절) 은혜와 성실은 잠시였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누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15절)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통해 듣는 고백의 음성입니다. 언제 구원을 받았습니까! 언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까! 누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 때문이라 말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죄인이며,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 그것이 성경이고 그 기에 복음이 있습니다. 입을 닫고 혼자 거룩하다고 하여 교회와 백성이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넘겨”주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을 아주 망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해 머리를 듭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었으므로”(7절) 정말의 위기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끝까지 남의 탓으로 하며 돌이키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은 부르짖어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빛으로 세우신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진리와 공의를 선포하고 그 백성들은 자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구하고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며 악의 자리를 떠나야 합니다.
2.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14절)
힘이 있어야합니다. 힘이 없으면 강탈과 죽임을 당하고 빼앗기며 종과 노예가 됩니다.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가 지난주에 만났습니다. 정상회담이 사실은 힘을 겨루는 자리인 것 같았습니다. 주제가 전도 되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나라를 세우는 일이 자국의 이익과 패권에 밀려났습니다. 성경의 말씀이 정치와 나라와 개인의 생명과 상관이 없다고 보십니까!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는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3-4절)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믿음은 허상이 아니라 실존에 대한 인식입니다.
“너는 가서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아의 손에서 구원하라” 시작이 있어야 결과도 있습니다. 말씀을 주셔야 힘을 얻습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그런데 현실은 너무도 달랐습니다.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 났나이까!” 지금도 이 시대를 보면 그렇게 말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대답 하십니다 “땅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 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10절) 그리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려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라”(삿7:2절).
죄가 하나님과 사람사이를 단절합니다.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을 상실하게 합니다. 방법이 어떠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시작이 선해야 결과도 의롭습니다. 기드온처럼 심히 작은 자였으나 시작이 주님께 있을 때 함께하심의 구원이 일어날 것입니다!
3.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아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24절)
처음부터 기드온의 마음에 믿음이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 치듯 하리라”(16절) 그런데 기드온이 대답합니다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시는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17절)
믿음과 행함의 간격을 말씀합니다 기드온이 말합니다 “내가 예물을 가지고 주께로 와서 그 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 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16절) 믿음의 시작은 예배입니다. 예배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절)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너 돌아올 때까지 머무르리라 하니라”(18절) 예배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하는 자리입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22절) 나는 죄인입니다 하는 고백이 있습니다. 그것이 약속을 이루는 백성의 표시가 됩니다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3절) 본문의 기사는 기드온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과정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지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더욱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할 때입니다. 이기와 욕심과 자기를 내어놓고 생명과 전쟁을 다스리시는 주 하나님을 구하고 찾을 때입니다.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재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24절)
기드온은 전쟁이전에 하나님의 재단을 세웠습니다. “여호와 살롬”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합니다. “평강”이 온 백성에 선포되고 나라를 “여호와 살롬”으로 세울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NKCL 사역자>
김영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