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KCL 말씀과 동행> 9월 째 주
본문: 룻기 3:6-13 "한 밤중의 청혼사건"
1.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 룻기는 사사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이 없었고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습니다. 죄악과 우상숭배로 매우 어두웠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고향 베들레헴이 기근이 들자 고향을 떠나 요단 건너편 모압 땅으로 가서 살다가 10년 만에 다시 고향 땅에 돌아온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슬하에 두 아들 네 식구였지만 돌아올 때는 남편과 두 아들은 죽고 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모압 땅에서 얻은 며느리 두 식구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아버지 유산을 가지고 멀리 떠났다가 거지꼴이 되어 다시 회개하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 가정이 고향을 떠날 때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고향에 돌아올 때는 완전히 파산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살길이 막막했고 자신들을 돌보아 줄 보호자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만약 어떤 가문에 한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었다면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아들을 낳게 하여 죽은 형제의 이름으로 그 재산을 상속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없다면 가까운 친족 중에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여자들은 가문의 땅을 상속할 수 없었고 경작하며 지킬 수도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사서 그 가문의 땅을 지켜주고 그들을 돌볼 의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까운 친족을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고엘’은 ‘기업무를 자’ 곧 ‘구속자’란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밤중의 청혼사건을 통해 이 파산한 가정이 어떻게 구속자를 만나서 가문을 회복시키게 되었는지 그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널고 탁 트인 타작마당, 하루의 열기가 가라앉고 지중해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입니다. 보리와 밀 추수가 끝낸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은 타작마당에서 까불기를 하고 있습니다. 곡식이 공중으로 던져지고, 무거운 알곡들은 발아래 쌓이며 왕겨는 바람에 날려 멀리 사라져갑니다. 올해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풍년입니다. 일을 마치고, 그들은 배불리 먹고 마십니다. 보아스는 흡족한 마음으로 곡식단 더미 곁에 누워 겉옷을 덮고 잠을 잡니다.
밤은 고요합니다. 풀벌레 소리만 들립니다. 그때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속으로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제가 모압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끝까지 어머니를 따르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보호아래 살기 원합니다. 보아스 이분이 우리 집안의 구속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이 밤에 제 운명을 맡깁니다. 제 발걸음을 지켜주소서.“
그녀는 보아스 겉옷을 살며시 들어올리고 그 곁에 조용히 누워 기다립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보아스는 몸을 뒤척이다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킵니다. ”누구나?“ 룻은 속으로는 떨렸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저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저를 덮어주소서. 당신은 저의 구속자가 될 분이십니다.“
보아스는 순간 설렘과 감동이 교차합니다. ”이 아이가 세상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늙은 나를 구속자로 선택했구나!“
보아스는 부드럽게 말합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든 부하든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두려워말라. 내가 네 말대로 다 행하리라. 너는 현숙한 여인인 것을 우리 성읍 모든 사람이 다 아느니라.“
여기서 ‘현숙한 여인’의 히브리 원어‘에셋 하일’은 ‘능력있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어 ‘어질 현’의 원래 뜻도 ‘일을 능력있게 잘 해낸다’에서 시작합니다. 단순히 여자의 ‘몸가짐이 단정하다’ 정도의 수동적인 뜻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지혜로운 여인’이란 뜻이 강합니다. 겸손하면서도 능력있는 여인, 외유내강형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기 1장, 2장에 보면 룻의 이러한 성품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의 청혼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당일에 법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한밤중의 룻의 청혼 사건은 나오미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리와 밀추수가 끝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날 조용히 기도하던 나오미가 룻을 불렸습니다. ”얘야, 이제는 네가 안식할 곳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룻이 깜짝 놀라 대답합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끝까지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대답합니다. ”아니다 내 말을 잘 들어보렴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란다. 나는 보아스가 우리의 구속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를 잘 돌보아 줄 위인이 아닌 것 같다.“
룻이 말합니다. ”어머니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나오미가 말합니다. ”오늘 밤이 기회란다. 보아스가 기꺼이 우리 구속자가 되기를 원하는지 먼저 그의 마음을 확인해야 한다.“ 룻이 대답합니다. ”네? 오늘 밤에요?“
나오미가 말합니다. ”낮에는 보는 사람이 많고 소문이 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몸단장 잘 하고 그가 보이지 않은 곳에 숨어있다가 밤에 그가 누울 때에 그의 발치 겉옷을 들고 거기 누워라. 그리고 그가 무엇을 말하든 그대로 행하거라.“
룻은 굳게 결심한 듯 대답합니다. ”네 어머니 말씀대로 다 하겠습니다.“
룻도 구속자가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보아스의 호의와 따뜻한 격려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줄지 몰라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그녀는 실행에 옮겨야 했습니다.
룻은 나이는 어렸지만 참으로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두 마음을 품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여인입니다. 롯의 시어머니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과 시어머니의 하나님은 여호와를 향한 마음으로 이어졌고 구속자 보아스를 향하여 용기있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녀는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주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를 통해 엘리멜렉 가문은 다시 살아납니다. 보아스의 어머니 곧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도 행함으로 그의 온 가문을 살렸던 것과 같습니다.
놀랍게도 마태복음 1장에 이방여인인 라합과 룻이 그리스도의 계보에 당당하게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3.우리 이야기 속으로
예전에 어느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말씀의 은사가 뛰어나신 목사님이었습니다. 설교 중에 갑자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겸손이 무엇입니까?“ 그때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 ”박수“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칩니다. 나는 대답을 잘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다음 말이 반전이었습니다. ”틀렸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습니다. 나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말합니다. ”겸손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눅16장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파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 사람들은 절박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열망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천국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스왈드챔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책: 오스왈드챔버스, [주님의 나의 최고봉]).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바라고 원하며 간절히 마음을 태우지만 극한 상황이 되기까지는 구하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만이 우리로 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영적 궁핍을 느끼는 가운데 구해본 적이 있습니까?“
4.나오는 말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자신의 영적실상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는 다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는’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의 홍수가 범람하며 죄악의 물결이 우리의 심령과 가정을 침몰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한결같은 마음으로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들도 세상에서 돌이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구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아래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NKCL 동역자>
김영년목사
<NKCL 말씀과 동행> 9월 째 주
본문: 룻기 3:6-13 "한 밤중의 청혼사건"
1.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 룻기는 사사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 시대은 어둡고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아직 왕이 없었고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했습니다. 죄악과 우상숭배로 매우 어두웠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고향 베들레헴이 기근이 들자 고향을 떠나 요단 건너편 모압 땅으로 가서 살다가 10년 만에 다시 고향 땅에 돌아온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날 때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슬하에 두 아들 네 식구였지만 돌아올 때는 남편과 두 아들은 죽고 과부가 된 시어머니와 모압 땅에서 얻은 며느리 두 식구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마치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아버지 유산을 가지고 멀리 떠났다가 거지꼴이 되어 다시 회개하고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 가정이 고향을 떠날 때는 부족함이 없었으나 고향에 돌아올 때는 완전히 파산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살길이 막막했고 자신들을 돌보아 줄 보호자가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당시에는 만약 어떤 가문에 한 형제가 아들이 없이 죽었다면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취하여 아들을 낳게 하여 죽은 형제의 이름으로 그 재산을 상속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없다면 가까운 친족 중에서 그 의무를 대신할 수 있게 했습니다. 또 여자들은 가문의 땅을 상속할 수 없었고 경작하며 지킬 수도 없었기 때문에 가까운 친족이 그 땅을 사서 그 가문의 땅을 지켜주고 그들을 돌볼 의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가까운 친족을 ‘고엘’이라고 부릅니다. ‘고엘’은 ‘기업무를 자’ 곧 ‘구속자’란 뜻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한밤중의 청혼사건을 통해 이 파산한 가정이 어떻게 구속자를 만나서 가문을 회복시키게 되었는지 그 사건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2.성경의 이야기 속으로
널고 탁 트인 타작마당, 하루의 열기가 가라앉고 지중해에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저녁 무렵입니다. 보리와 밀 추수가 끝낸 보아스와 그의 일꾼들은 타작마당에서 까불기를 하고 있습니다. 곡식이 공중으로 던져지고, 무거운 알곡들은 발아래 쌓이며 왕겨는 바람에 날려 멀리 사라져갑니다. 올해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로 풍년입니다. 일을 마치고, 그들은 배불리 먹고 마십니다. 보아스는 흡족한 마음으로 곡식단 더미 곁에 누워 겉옷을 덮고 잠을 잡니다.
밤은 고요합니다. 풀벌레 소리만 들립니다. 그때 한 여인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옵니다.
그녀는 속으로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제가 모압에서 여기까지 온 것은 끝까지 어머니를 따르기 위함입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보호아래 살기 원합니다. 보아스 이분이 우리 집안의 구속자가 되길 원합니다. 오늘 이 밤에 제 운명을 맡깁니다. 제 발걸음을 지켜주소서.“
그녀는 보아스 겉옷을 살며시 들어올리고 그 곁에 조용히 누워 기다립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보아스는 몸을 뒤척이다가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킵니다. ”누구나?“ 룻은 속으로는 떨렸지만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합니다. ”저는 당신의 여종 룻입니다. 당신의 옷자락으로 저를 덮어주소서. 당신은 저의 구속자가 될 분이십니다.“
보아스는 순간 설렘과 감동이 교차합니다. ”이 아이가 세상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늙은 나를 구속자로 선택했구나!“
보아스는 부드럽게 말합니다.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가난하든 부하든 젊은 자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니 네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이 더하도다. 두려워말라. 내가 네 말대로 다 행하리라. 너는 현숙한 여인인 것을 우리 성읍 모든 사람이 다 아느니라.“
여기서 ‘현숙한 여인’의 히브리 원어‘에셋 하일’은 ‘능력있는 여자’라는 뜻입니다. 한자어 ‘어질 현’의 원래 뜻도 ‘일을 능력있게 잘 해낸다’에서 시작합니다. 단순히 여자의 ‘몸가짐이 단정하다’ 정도의 수동적인 뜻이 아닙니다. ‘능동적이고 지혜로운 여인’이란 뜻이 강합니다. 겸손하면서도 능력있는 여인, 외유내강형 여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룻기 1장, 2장에 보면 룻의 이러한 성품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보아스는 그녀의 청혼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당일에 법적인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마침내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습니다. 룻은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됩니다.
한밤중의 룻의 청혼 사건은 나오미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나오미는 보리와 밀추수가 끝날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날 조용히 기도하던 나오미가 룻을 불렸습니다. ”얘야, 이제는 네가 안식할 곳을 구해야 하지 않겠느냐?“ 룻이 깜짝 놀라 대답합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저는 끝까지 어머니 곁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나오미가 대답합니다. ”아니다 내 말을 잘 들어보렴 이것이 우리가 살 길이란다. 나는 보아스가 우리의 구속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우리를 잘 돌보아 줄 위인이 아닌 것 같다.“
룻이 말합니다. ”어머니 그러면 어찌해야 할까요?“ 나오미가 말합니다. ”오늘 밤이 기회란다. 보아스가 기꺼이 우리 구속자가 되기를 원하는지 먼저 그의 마음을 확인해야 한다.“ 룻이 대답합니다. ”네? 오늘 밤에요?“
나오미가 말합니다. ”낮에는 보는 사람이 많고 소문이 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몸단장 잘 하고 그가 보이지 않은 곳에 숨어있다가 밤에 그가 누울 때에 그의 발치 겉옷을 들고 거기 누워라. 그리고 그가 무엇을 말하든 그대로 행하거라.“
룻은 굳게 결심한 듯 대답합니다. ”네 어머니 말씀대로 다 하겠습니다.“
룻도 구속자가 그들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보아스의 호의와 따뜻한 격려에 얼마나 큰 힘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의 청혼을 받아줄지 몰라 마음이 떨렸습니다. 그것을 알려면 그녀는 실행에 옮겨야 했습니다.
룻은 나이는 어렸지만 참으로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두 마음을 품지 않은 한결같은 마음을 가진 여인입니다. 롯의 시어머니에 대한 한결같은 마음과 시어머니의 하나님은 여호와를 향한 마음으로 이어졌고 구속자 보아스를 향하여 용기있게 나아가게 했습니다. 그녀는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주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를 통해 엘리멜렉 가문은 다시 살아납니다. 보아스의 어머니 곧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도 행함으로 그의 온 가문을 살렸던 것과 같습니다.
놀랍게도 마태복음 1장에 이방여인인 라합과 룻이 그리스도의 계보에 당당하게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3.우리 이야기 속으로
예전에 어느 교회의 부흥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말씀의 은사가 뛰어나신 목사님이었습니다. 설교 중에 갑자기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 겸손이 무엇입니까?“ 그때 나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 ”박수“했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칩니다. 나는 대답을 잘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의 다음 말이 반전이었습니다. ”틀렸습니다.“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습니다. 나는 조금 당황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말합니다. ”겸손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용서받은 죄인과 용서받지 못한 죄인’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눅16장 ‘세리의 겸손한 기도’를 기억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의 그들의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영적인 파산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아는 자‘입니다. 그 사람들은 절박하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열망합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천국이 주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오스왈드챔버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책: 오스왈드챔버스, [주님의 나의 최고봉]).
”구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바라고 원하며 간절히 마음을 태우지만 극한 상황이 되기까지는 구하지 않습니다. 절망적인 상황만이 우리로 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은 영적 궁핍을 느끼는 가운데 구해본 적이 있습니까?“
4.나오는 말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 자신의 영적실상을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우리는 다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는’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소서‘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이 세상은 죄악의 홍수가 범람하며 죄악의 물결이 우리의 심령과 가정을 침몰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오직 한결같은 마음으로 구원의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매들도 세상에서 돌이켜 주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중보기도해야 합니다. 구속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호아래 들어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NKCL 동역자>
김영년목사